평상복 차림으로 브리핑을 진행한 최 대사는 “미처 카불에서 양복을 가져오지 못했다”며 “(공항으로 이동하는) 헬기에 타려면 가방이 가로·세로·높이(30x30x20㎝)가 제한돼 필수 물품만 챙겼다”고 말했다.
최 대사가 전한 아프가니스탄 탈출기는 지난 15일 오전(현지시간)부터다. 당일 외교부 본부와 화상회의를 하던 중 대사관을 지키는 경비업체로부터 탈레반 부대가 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떨어진 장소까지 진입했다는 보고를 접했다. 최 대사는 곧바로 평소 친분이 있던 우방국 대사들과 전화통화로 급박한 당시 상황에 대해 파악한 뒤 바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전했다.
최 대사는 “철수 결정이 난 뒤 모든 직원들이 기본 매뉴얼에 따라 대사관 문서와 보안 자료들을 파기하고 철수를 위해 차량으로 5분 거리의 우방국 대사관으로 이동했다”며 “우방국 대사관에서 군공항까지는 헬기로 이동했다”고 말했다.
최 대사는 “1차 설득에서도 사업을 정리해야 하니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해 설득에 나섰던 직원들이 결국 돌아오게 됐다”며 “다른 국가 대사관 직원들이 탑승 수속을 하고 떠나는 상황이 계속돼 이 분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대부분의 직원을 국외로 철수시키고 나를 비롯해 총 3명의 직원이 남아 마지막 교민의 철수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본부에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”고 설명했다.
최 대사 일행의 마지막 탈출 직전, 우방국에 의해 비교적 통제되던 군공항조차 상황이 매우 급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. 최 대사는 “(15일) 오후 5시경 (1차 철수) 대사관 직원들이 탑승 수속을 모두 끝내고 순서가 돼 군용기를 타러 이동하고, 남은 직원들이 (A씨를) 설득하러 이동하던 중 공습 경보가 울렸다”며 “긴급히 옆 건물로 대피하고 항공기에 탑승해있던 직원들도 대합실로 다시 돌아와 한 시간 정도 대피했다”고 말했다. 이어 “(A씨도) 1차 설득했을 때는 (그 분도) 알아서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은데 오후 내내 상황이 진행되는 것 보고 다른 직원들이 다 철수하는 걸 보고도 (자신의 설득을 위해) 온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변한 것 같았다”고 설명했다.
15일 저녁부터는 카불 공항의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. 현지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민간 공항으로 몰려든데 이어 군공항으로까지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. 최 대사는 “15일 저녁부터 민간공항 지역으로 군중들이 넘어오고 민항기에 매달려 있던 상황”이라며 “이들 중 일부는 총기도 소지하고 있어서 15일 저녁부터는 총소리도 들리고 우방국 헬기가 공항 위를 맴돌면서 상황 경계도 했다”고 말했다.
하지만 16일 오전부터 군중들이 군 활주로로 넘어오며 군용기들의 운항이 전부 취소되며 A씨의 출국도 무한정 대기하게 됐다. 17일 새벽부터 현장 정리가 되며 군용기의 운항이 재개됐고 A씨는 결국 대사관 직원 3명과 같은 군용기에 탑승해 이동하게 됐다.
최 대사는 “(A씨와) 같이 출국하는 게 좋겠다 싶어 본부의 허가 승인을 받고 새벽 3시 경에 이 분과 함께 군용기를 타고 아프간에서 나오게 됐다”며 “이 군용기는 우방국에서 운용하는 큰 수송기로, 오래 전에 배를 타듯이 오밀조밀 바닥에 몰려 앉아 탑승했다”고 말했다.
당시 이 수송기 탑승자 대부분은 미국인으로 아프간인들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. 외교부 당국자는 “군용기에 탑승한 아프간인 대부분은 공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거나 우방국 대사관과 친한 등 현지 상황을 파악해 올 수 있었던 일종의 ‘백’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파악한다”고 말했다.
송영찬 기자 0full@hankyung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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